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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이 글에서는 게으름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을 다시 바라보고, 생산성과 쉼 사이에서 어떻게 건강한 균형을 찾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 봅니다. 게으름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합니다.
게으름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개념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일하지 않거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종종 나태하고 무책임하다는 평가를 받곤 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쉬거나 멈추는 행위를 시간 낭비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리듬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누구나 에너지를 회복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과도한 생산성과 끊임없는 자기 계발은 오히려 소진과 무기력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이러한 피로가 쌓일수록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낮아집니다.
1. 게으름은 왜 항상 나쁜 걸까?
게으름이라는 단어는 오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의미로만 해석되어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게으름을 단점이나 결점으로 배워왔습니다. 숙제를 미루거나 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행동은 곧장 게으르다는 평가로 이어졌고, 이는 마치 의지력이 부족하거나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사회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처럼 게으름=나쁨이라는 공식은 항상 옳은 것일까요?
게으름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은 산업화 시대 이후 본격화되었습니다. 공장과 회사, 조직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삶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돈이 되었고,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개인의 일상에도 깊게 스며들어, 우리는 쉴 때조차 지금 이 시간에 뭔가 더 생산적인 걸 할 수 있었는데라는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주말 아침 늦잠을 자거나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 오래된 시각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성과를 계속해서 내는 것이 가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멈추고, 되돌아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통해 자기를 회복하고 삶을 정돈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이 점에서 게으름은 단순히 비생산적인 상태가 아니라, 내면을 위한 휴식이며, 때로는 창조와 통찰이 싹트는 토양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많은 창조적인 인물들은 게으름 혹은 한가함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서 멍하니 쉬는 시간에 중력의 개념을 떠올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역시 혼자 걸으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간들은 명백하게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었지만, 인류의 지식과 상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게으름의 시간은, 사실 창의성과 사유의 공간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자나 철학자들 역시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성과를 내기 위해 자기를 착취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삶은 결국 탈진과 무기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가끔은 게으름을 부리는 것이야말로 자기 파괴를 막고 자기 존중을 회복하는 중요한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 건강의 측면에서도, 일정 수준의 게으름은 오히려 안정감과 회복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현대인의 만성 피로와 불안, 번아웃 증후군 등은 과도한 자기 관리와 끊임없는 과제 수행에서 비롯됩니다. 이럴 때 무조건적인 생산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일시적인 비생산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휴식이 충분히 주어질 때 집중력과 창의력은 오히려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을 무능이나 의지 부족으로만 해석하는 태도는 오히려 자기 파괴적인 사고일 수 있습니다. 물론 무한정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의 게으름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으름은, 일시적인 쉼과 자기 회복을 위한 시간이며, 사회의 일방적인 가치 기준에서 벗어나 나만의 리듬을 찾는 행위입니다. 생산성과 효율성만으로는 결코 인간의 삶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게으름은 바로 그 틈을 채워주는 인간다움의 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시기에는 열심히 달릴 필요도 있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과감히 멈추고 쉬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니 다음에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꼭 한번 이렇게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정말 게으른 것일까? 아니면 잠시 쉬어야 할 시간이 온 것일까? 이 질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과 휴식의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2. 비생산성 속에 숨겨진 창의성과 회복
비생산성이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게으름이나 무의미한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하고, 무엇이든 결과를 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멍하니 있는 시간은 마치 실패한 시간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들 속에, 오히려 창의성과 회복의 씨앗이 숨겨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놀랍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더 활발히 움직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은 사람의 뇌가 외부 자극 없이 휴식 상태일 때 작동하는 기본 모드 네트워크를 발견했습니다. 이 뇌 네트워크는 명상, 산책, 멍 때리기 같은 상태에서 활성화되며, 자아 성찰이나 창의적 사고에 깊이 관여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뇌는 오히려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해석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디어가 갑자기 샤워 중이나 잠들기 직전에 떠오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창의성은 생산성의 반대편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을 위한 잠재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표와 일에 쫓길 때는 눈앞의 것에만 집중하게 되지만, 여유로운 상태에서는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평소에는 연결되지 않던 정보나 기억들이 새롭게 조합됩니다. 예술가들이 창작은 고요한 시간 속에서 탄생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등 수많은 창조적 업적들은 바쁜 업무 시간표가 아니라, 한가하고 자유로운 순간에 탄생했습니다. 단순히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시간, 그런 비생산적인 순간들이 오히려 내면에서는 거대한 창의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회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작동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쉴 틈 없이 과제와 책임에 시달리면 피로는 누적되고, 결국 집중력 저하와 감정 소진으로 이어집니다. 번아웃은 이런 상태가 지속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결과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는 SNS와 스마트폰 덕분에 24시간 일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며,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줍니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가들은 일정한 무기력의 시간이 있어야 뇌와 감정이 회복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운동 후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듯, 감정과 에너지 역시 충전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이처럼 비생산적인 시간은 단지 회복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외부 기준이나 타인의 기대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미뤄두었던 내 감정, 내 욕구, 내 생각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일까? 같은 본질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쉽게 묻혀버리는 이 질문들은 삶의 방향을 조정하고,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비생산성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큰 생산성을 위한 준비이며, 창의성과 회복의 숨겨진 자양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무가치하게 보지 않고, 지금은 재충전 중인 나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비생산의 시간도 풍요로운 경험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생산성과 비생산성 사이에는 선명한 경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두 개념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쓸모없는 시간이라는 말로 그 시간을 폄하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내가 숨 쉬고 회복하고 자라나는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당신은,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삶의 방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게으름의 권리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더 나은, 더 빠른, 더 효율적인 삶을 요구합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질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은 인간을 하나의 생산 기계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종종 잊혀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다움입니다. 인간다움을 지킨다는 것은 감정, 여유, 관계, 성찰과 같은 비가시적이지만 본질적인 삶의 요소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때로는 그를 위해 우리는 게으를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게으름이라는 단어는 오랜 시간 부정적인 의미로 굳어져 왔습니다. 무기력, 나태, 의지 부족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며, 능력 없는 사람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게으름은 반드시 그런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틈,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벗어날 기회, 고요한 자유를 주는 소중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인간다움이란 단순히 일 잘하고 성과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고, 관계를 맺고,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언제나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쉽게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게으름은 그런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내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아침에 알람을 한 번 더 미루고, 주말에는 아무 계획 없이 침대에 머무르고,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그 순간들 속에 우리는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게으름은 사회가 강요하는 표준 시간에서 이탈하여, 자신만의 리듬을 되찾는 행위입니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편안함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쉼과 게으름은 사실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게으른 행동처럼 보이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회복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일하고 짧게 쉼을 취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느리게 움직이고 충분한 여유를 가져야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소수의 리듬만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나머지를 배제하거나 평가절하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도 온전히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지속적인 가동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시간을 잃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소비되고, 속도를 따라잡느라 바쁘다 보면 결국 내 시간, 내 감정, 내 사고를 할 여유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게으름의 권리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게으름은 단순한 무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시간과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 하나의 철학적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게으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인간관계마저도 효율적으로 정리되고 소비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무 목적 없이 친구와 마주 앉아 수다를 떨거나, 가족과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시간은 인간관계의 깊이를 만들어 줍니다. 이런 순간들은 생산성은 없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진실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왜 일하고, 왜 바쁘게 사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인간다움의 뿌리 같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결국 게으름은 무언가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잃지 않고 싶은지를 되묻는 행동입니다. 내 몸과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사회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며, 나는 나로서 살아가겠다는 작고 조용한 선언입니다. 그런 점에서 게으름은 하나의 권리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다움의 한 조각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게으름을 죄처럼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진짜 삶의 온도와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게으름은 그 어떤 생산적인 시간보다도 더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천천히 걷는 사람의 걸음이, 어쩌면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걸음일지도 모릅니다. 게으름의 권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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