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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정의로운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 공정함과 평등에 대한 일상적 고민과 철학

by 로아벨 2025. 6. 22.

    [ 목차 ]

이 글에서는 공정함과 평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지 법의 지배나 형식적인 평등을 넘어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실질적인 공정함과 배려가 실현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공정이나 차별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 전반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정의는 누군가에게만 유리한 시스템이 아니라,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정의로운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 공정함과 평등에 대한 일상적 고민과 철학
정의로운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 공정함과 평등에 대한 일상적 고민과 철학

1. 공정함은 모두에게 같은 것이 아닙니다

공정함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자주 언급됩니다. 입시, 취업, 복지,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은 공정함을 요구하고, 또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때 강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공정함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경우, 사람들은 공정함을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누군가에게만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불공정하게 느껴지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공정함은 단순히 동일한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출발점이 다릅니다. 태어난 가정의 경제력, 부모의 학력, 거주 지역, 건강 상태, 심지어는 성별이나 피부색까지도 각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이는 유아기부터 다양한 책과 교육 자료에 둘러싸여 자라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며 안정적인 진로를 보장받습니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을 돌보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공부할 기회조차 가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실은 이미 공정하지 않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똑같은 시험, 똑같은 채용 절차, 똑같은 교육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진짜 공정한 일일까요? 정의로운 사회는 이처럼 겉보기엔 평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평등한 제도와 조건을 직시해야 합니다.

진정한 공정함이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는 휠체어 경사로가 필요합니다. 이를 제공하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계단을 이용하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평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별적인 처사입니다. 마찬가지로, 학습 기회가 부족했던 아이에게는 더 많은 교육적 지원이 필요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는 추가적인 보조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런 실질적 평등이 때때로 특혜로 오해된다는 점입니다. 사회는 종종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불공정하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출발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한 시각입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대우함으로써 같은 높이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공정함입니다.

이 원칙은 교육, 의료, 복지, 노동 등 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교육에서의 기회의 균등이란 단순히 입시 제도를 공평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한 공교육의 질적 향상, 무료 학습 자원 제공, 멘토링 프로그램 등의 맞춤형 지원이 있어야 비로소 실질적인 공정함이 실현됩니다. 직장 내 승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직원이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며 경력 단절을 겪은 경우, 동일한 연차의 남성과 동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반영한 평가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진정한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합니다. 공정함에 대한 오해는 때때로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주장하며,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추가적인 배려를 불공정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개개인이 가진 보이지 않는 자원, 예를 들어 안정적인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인맥, 조언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자본 등을 모두 동일하게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더 큰 불평등을 낳게 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런 복잡한 현실을 인식하고, 단순한 평등이 아닌 상황에 맞는 공정함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정함은 제도적인 차원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 변화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존중하며, 그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감수성을 갖출 때, 공정함은 제도 너머의 실제적인 의미로 자리 잡게 됩니다.

결국 공정함은 모두에게 똑같이가 아니라, 각자에게 적절하게 주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공정함을 단순히 균등의 문제로 보지 않고, 차이를 이해하고 그것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평등은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등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개념입니다. 법 앞에 평등하다, 교육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매우 자주 들립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주 사용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평등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거나,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평등을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으로만 이해할 때, 오히려 불평등한 현실을 외면하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평등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고 그 차이 속에서도 각자가 존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릅니다.

외모, 성별, 나이, 출신 지역, 경제적 배경, 언어, 신념, 성적 지향, 장애 유무, 학력, 가족 형태 등 각자가 가진 조건은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줍니다. 문제는 이 다양한 차이들이 때때로 차별과 배제의 근거가 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피부색이나 성별이, 다른 사회에서는 출신 지역이나 학벌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평등은 다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도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습니다. 겉보기엔 모두에게 같은 건물, 같은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평등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계단밖에 없는 건물 앞에 섰을 때, 그것은 결코 평등한 조건이 아닙니다. 누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려면, 그에 맞는 환경적 조정이 필요합니다. 즉,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위한 조치입니다. 같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방식의 평등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예는 성별에 따른 평등 문제입니다. 여성은 오랜 세월 동안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적은 기회를 부여받아 왔습니다. 과거에는 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오늘날에도 동일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임금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모두에게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평등은 단순히 규칙을 같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차별을 인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보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책에서 특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성소수자, 이주민, 다문화가정, 저소득층 등은 사회 다수의 기준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똑같은 방식의 교육이나 복지, 고용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동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차이를 존중하는 평등의 실현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존중하려는 시도조차 불공정하거나 역차별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왜 저 사람만 특별대우를 받는가?, 나는 아무 혜택도 못 받는데 왜 저 사람은 지원을 받는가? 와 같은 반응은 평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진정한 평등은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을 보완하여 결과의 평등에 가까워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오히려 기존의 차별 구조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일이 됩니다. 평등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모습으로 존중받고, 차별 없이 삶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차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사회가 품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 인식을 바꾸자는 방향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고,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교육을 받는 것 역시 평등한 사회를 위한 토대가 됩니다.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것을 사회의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결국 평등은 결과적으로 모두가 똑같이가 아니라, 모두가 다르게 살아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등을 차이를 무시하는 개념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치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정의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다양성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사회야말로 평등한 사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평등은 강자가 약자를 포용하고, 다수가 소수를 이해하려는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평등은 어떤 기준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기준이 모두에게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각자의 자리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차이를 존중하는 평등이며, 정의로운 사회의 핵심입니다.

3. 정의는 언제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지는 사회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떠올립니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정의에 대해 고민해 왔고, 정치인과 시민들 역시 정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하지만 정의란 단순히 책 속에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법전이나 헌법 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가치입니다. 다시 말해, 정의는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살아 있는 가치가 됩니다.

우리는 종종 정의를 국가나 정부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가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 제도와 구조는 정의를 담는 그릇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법이 있어도, 그것이 현실에서 사람들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정의는 단지 글자에 불과합니다. 결국 정의는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작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매너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곧 정의의 실천과도 연결됩니다. 회사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업무 분배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인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정의가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이러한 순간들 속에서 정의는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정의는 거창한 운동이나 거대한 개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동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그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바로 이런 행동들이 정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실천입니다. 누군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때 침묵하지 않고 연대하는 자세, 다수의 편견에 맞서 소수의 목소리를 지지하는 태도, 모두가 외면할 때도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 바꾸려는 시도는 크고 작게 정의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입니다. 또한, 정의의 실현은 자기 성찰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일원이자 누군가에게는 힘을 가진 존재일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특권이 무엇인지, 내가 알게 모르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차별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과 함께 일할 때, 그의 방식이 불편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이 단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 안에 은연중 존재하는 편견 때문인지를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정의는 타인을 변화시키는 데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서도 출발합니다. 정의는 때때로 불편함을 요구합니다.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고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비난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모두가 침묵할 때, 단 한 사람의 외침이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런 외침이 모여 사회의 방향을 바꿉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천이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만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부모든, 시민 누구나 일상 속에서 정의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친구를 따돌리는 모습을 보고 그냥 넘기지 않는 것, 상점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대우를 지적하는 것, 여성이나 장애인에게 향하는 차별적 시선을 거부하는 것, 모두 정의를 살아 있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이며, 나의 행동은 누군가에게 기준이 되고 기준은 또 다른 변화를 만듭니다. 또한 우리는 제도와 구조를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합니다. 불합리한 정책, 차별적인 제도, 불공정한 채용이나 교육 시스템이 존재할 때, 그에 대해 말하고 바꾸자고 요구하는 시민의 행동이야말로 정의의 실천입니다. 한 사람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확장해 생각하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긋지 않는 태도가 정의를 현실로 이끌어냅니다.

결국 정의는 실천 없는 구호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는, 구성원 각자가 삶의 자리에서 정의를 실천할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작지만 단호한 행동,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 나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 모여 정의를 만들어 갑니다. 정의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자리, 우리의 선택과 행동 속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의를 선택하는 순간,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집니다.